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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영화의 10 가지 법칙

모지사바하 2009. 9. 11. 12:45

작년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이어 올해 <킹콩을 들다>와 <국가대표>가 이어지면서, 스포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진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스포츠 영화. 하지만 이것은 할리우드를 포함한 전세계 스포츠 영화의 공통된 요소이며, 그 안엔 반복되는 법칙들이 있다. 스포츠 영화에서 반복되는 공식과 특징들을 모아 보았다.


l 김형석(영화 칼럼니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스포츠 영화의 10가지 법칙
첫 번째 법칙. 스포츠 영화는 장르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액션에 가까운 <드리븐>(왼쪽)과 코미디에 가까운 <캐디쉑>.
사실 스포츠 영화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코미디부터 액션까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로맨스 영화와 휴먼 드라마를 흡수하고, 가끔은 판타지 장르까지 침범하는 스포츠 영화의 오지랖은 대단하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스포츠가 영화 스토리의 중심을 차지하는 영화'겠지만, 이것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둘 다 미식축구를 다루긴 하지만 <롱기스트 야드>(2005)는 서슴없이 스포츠 영화로 꼽을 수 있어도, 에이전트의 이야기가 중심인 <제리 맥과이어>(1996)은 조금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다른 장르의 요소가 너무 지배적인 경우도 많다. 카 레이싱을 다루는 <드리븐>(2000)은 액션에, 대표적인 골프 영화라곤 하지만 <캐디쉑 Caddyshack>(1980)은 코미디에, 권투 영화의 고전인 <육체와 영혼 Body and Soul>(1947)은 느와르에 더 방점이 찍힌다. 엄밀하게 말하면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인 <>(2006)도 스포츠 영화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더욱 난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포츠의 개념을 넘어서는 경우. 몇몇 파격적 접근들은 조금 당황스럽다. 어떤 분류법은 <글래디에이터>(2000)를 검투사들의 대결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스포츠 영화로 보고 있으며(서기 2세기에 스포츠의 개념이 있었을까?), 철자 암기 대회를 다룬 다큐멘터리 <스펠바운드 Spellbound>(2002)도 스포츠 영화의 걸작 중 한 편으로 꼽힌다. 내기 당구(pool)를 소재로 한 <허슬러>(1961)는 물론, 포커를 다루는 <신시내티의 도박사 The Cincinnati Kid>(1965)도 스포츠 영화에 포함된다(그렇다면 <타짜>(2006)도?).

노먼 주이슨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롤러볼>(왼쪽)과 <베이스켓볼>. 모두 존재하지 않은 스포츠를 다루고 있다.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Sports Illustrated>가 선정한 '최고의 스포츠 영화 50편'을 보면 좀 더 혼란스럽다. 체스 경기를 다룬 <위대한 승부 Searching Bobby Fischer>(1993), 애견 대회를 배경으로 하는 <베스트 쇼 Best in Show>(2000)도 포함되며, 이소룡의 <정무문>(1971)이 '마샬 아트'를 다룬다는 이유로 순위에 올라 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다루는 영화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2002년에 존 맥티어넌 감독이 리메이크해서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던, 노먼 주이슨 감독의 <롤러볼>(1975)에 등장하는 경기인 '롤러볼'은 이른바 '퓨쳐 스포츠'. <베이스켓볼>(1998)에 등장하는 맷 스톤과 트레이 파커가 고안한, 야구와 농구를 합친 이상한 게임 '베이스켓볼'(야농구? 혹은 농야구?)도 처치 곤란한 대상이다. 그렇다면 <파이트 클럽>(1999)도 격투기 영화로 분류해야 하는 걸까?

두 번째 법칙, 스포츠 영화와 실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복서 제이크 라모타에 대한 전기 영화 <분노의 주먹>(왼쪽)과 대한민국 국가대표 핸드볼 팀의 실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 수많은 스포츠 영화 앞에 붙는 수식어다. 특히 감동적인 걸작 스포츠 영화일 경우,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최근 한국영화만 봐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킹콩을 들다>(2009) <국가대표>(2009)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그 현실성은 영화적 가공을 거쳐 감동 코드로 재탄생했다.

스포츠 영화가 유독 실화를 사랑하는 건, "현실이 픽션보다 더 극적"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선수들의 삶과 그들이 겪는 고뇌의 생생한 감동 때문이다. <상처뿐인 영광>(1956, 권투) <분노의 주먹>(1980, 권투) <불의 전차>(1981, 육상) <후지어>(1986, 농구) <여덟명의 제명된 남자들>(1988, 야구) <그들만의 리그>(1992, 야구) <쿨 러닝>(1993, 봅슬레이) <허리케인 카터>(1999, 권투) <알리>(2002, 권투) <루키>(2002, 야구) <씨비스킷>(2003, 경마)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2004, 미식축구) <신데렐라 맨>(2005, 권투) <지상 최고의 게임>(2005, 골프) 등 스포츠 영화의 명작으로 평가 받는 수많은 작품들이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화했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윤색이 있을 수밖에 없고, 간혹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NBA를 꿈꾸는 소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후프 드림스>(왼쪽)와 보디빌딩에 대한 다큐멘터리 <펌핑 아이언>.
여기에 <꿈의 구장>(1989)처럼 실제 사건에 판타지를 가미하거나, <제리 맥과이어>처럼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거나, <히 갓 게임>(1998)처럼 진짜 스포츠 선수(NBA 스타인 레이 앨런)가 (카메오가 아닌) 배우로 출연하는 경우도 그 현실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임순례 감독은 영화 말미에 임영철 국가대표 핸드볼 팀 감독의 영상을 삽입함으로써 일종의 '오마주'를 바치기도 했다.

스포츠 영화에서 '현실성'이 중요하다는 건, 걸작 스포츠 영화에 다큐멘터리가 꽤 많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스포츠 영상의 기준을 제시했던 <올림피아>(1936), 완벽한 파도를 찾는 서퍼들의 이야기인 <파도 속으로 The Endless Summer>(1966),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등장하는 보디 빌딩 영화 <펌핑 아이언 Pumping Iron>(1977), NBA 진출을 꿈꾸는 흑인 소년들의 이야기 <후프 드림스>(1994),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우리가 왕이었을 때 When We Were Kings>(1996), 스케이트보드에 빠진 소년들의 이야기 <독타운과 Z 보이즈 Dogtown and Z-Boys>(2002)….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봐둘 만한 작품들이다.

세 번째 법칙, 오합지졸이 큰 일을 해낸다.

<메이저 리그>(왼쪽)와 <국가대표>.
스포츠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가능성 없어 보였던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해내는 바로 그 순간이다(<슬램덩크>에서 북산고가 산왕공고를 꺾었을 때나 '천하무적 야구단'이 첫 승을 거두었을 때가 적절한 예일까).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메이저리그>(1989). 새로 부임한 구단주는 의도적으로 약한 팀을 만들어 연고지를 옮길 계략을 꾸미지만, 그렇게 모인 멤버들은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며 기적을 일으킨다. 이런 기적은 <리플레이스먼트>(2000)에서도 일어나는데 선수들의 파업으로 급조된 '아마추어급' 프로 미식축구 팀은 승승장구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승리보다 더 중요한 건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변화를 겪는다는 점. <국가대표>는 그 전형적인 예로 모래알 같았던 그들 사이에 신뢰라는 것이 싹튼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소림축구>(2001)를 말할 수 있겠다.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며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결국 하나가 되고 자신감을 되찾는다. 이런 류의 영화라면 <으랏차차 스모부>(2000)도 빼놓을 수 없을 듯. 그리고 <YMCA 야구단>(2002)의 어중이떠중이들도 무패의 야구단이 된다.

네 번째 법칙, 경기 장면만큼이나 연습 과정도 흥미롭다.

<록키>에서 환호하는 록키 발보아(왼쪽). 인간 샌드백이 된 <주먹이 운다>의 강태식.
다소 거친 이분법을 쓰자면, 스포츠 영화를 즐기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경기 장면의 스펙터클을 즐기거나, 연습 과정의 악전고투에 박수를 보내거나.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나름의 재미가 있겠지만, 많은 스포츠 영화들이 클라이맥스를 위해 흥미로운 연습 장면들을 포석으로 놓으며,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그 장면들이다. <주먹이 운다>(2005)가 대표적.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건, 강태식(최민식)과 유상환(류승범)이 링에서 맞붙기 직전까지, 그들이 거치는 그 시간들이다.

사실 '마지막 승부'가 감동적인 것은 한 계단씩 밟아가는 훈련 과정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영화가 바로 <록키>(1976)다. 아폴로와의 대결만큼이나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장면은 록키(실베스터 스탤론)가 매달린 냉동 고기를 샌드백 삼아 두들기고, 주제음악인 'Gonna Fly Now'가 흐르는 가운데 필라델피아 거리를 달리다가 계단을 뛰어올라 두 팔을 번쩍 올리는 신일 듯. <쿨 러닝>도 좌충우돌하는 훈련 장면이 경기 장면만큼이나 기억에 남는다. <불의 전차>의 최고의 명장면도 실제 경기보다는 반젤리스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선수들이 해변가를 달리는 바로 그 장면이다.

여기서 경기보다는 훈련에 가장 많은 노력을 쏟은 영화를 뽑는다면 아마도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일 듯.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외인구단이 거두는 승리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과정이다. 용광로 같았던 지옥 훈련을 통해 정련된 그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력한 '야구 병기'가 된다.

다섯 번째 법칙, 모든 것은 코치에게 달렸다.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의 게리 게인즈 코치(왼쪽)와 <리멤버 타이탄>의 허먼 분 코치.
록키에게 트레이너 미키(버제스 메레디스)가 없었다면 그가 마지막 회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좋은 코치 혹은 감독 혹은 스승은, 좋은 스포츠 영화의 필수조건. 꽤 많은 영화들은 선수가 아닌 코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종종 드러나는데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의 게리 게인즈(빌리 밥 손튼)나 <리멤버 타이탄>(2000)의 허먼 분(덴젤 워싱턴)은 대표적인 인물. 감동적 농구 영화 <후지어>의 노먼 데일(진 해크먼)과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슈터(데니스 호퍼)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좋은 코치이면서 삶의 스승이었다.

이외에도 스포츠 영화의 '인상적 코치'들은 매우 많은데 몇몇 유형이 드러난다. 알코올에 빠져 살던 전직 메이저리그 선수인 <배드 뉴스 베어즈>(2005)의 모리스(빌리 밥 손튼)나, 사회 봉사 명령을 받은 <말아톤>(2005)의 정욱(이기영)처럼, 마지못해 시작했다가 열정에 불타는 일군의 코치들이 있다. 여기서 위대한 코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선수의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일 터. 그렇다면 <골!>(2005)에서 산티아고(쿠노 베커)를 알아본 글렌 포이(스티븐 딜레인)는 최고의 코치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건 코치는 의욕에 불타 있지만 선수들이 따라주지 않을 때, 반드시 선수 중 한 명은 코치를 도와 팀을 변화시킨다는 사실. <리플레이스먼트>의 지미 맥긴티(진 해크먼) 코치가 힘들어할 때, 쿼터백인 셰인(키아누 리브스)는 팀워크의 중심이 된다.

<쿨 러닝>의 어빙 코치(왼쪽)와 <국가대표>의 방 코치.
코치 캐릭터는 영화에 활력과 웃음을 불어넣는 감초 조연이 되기도 하는데 <쿨 러닝>의 어빙(존 캔디)이나 <국가대표>의 방 코치(성동일)는 전형적이다. <반칙왕>(2000)에서 장 관장 역을, <슈퍼스타 감사용>(2004)에서 박 감독 역을 맡은 장항선은 '코치 포스'로는 아마 국내 최고가 아닐까 생각되는 배우('체육교사 포스'로는 이한위가 있으며 그 뒤를 김수로가 잇는다. 그들은 <울학교 이티>(2008)에서 전현직 체육교사로 만난다).

<그들만의 리그>의 지미 듀건(톰 행크스)은 약간은 삐딱해도 매력적이었던 인물. <꾸러기팀 Wildcats>(1986)의 여성 코치 몰리 맥크래스(골디 혼)는 황소만한 남성들이 득실거리는 미식축구 팀을 이끈다. 여기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코치 캐릭터를 꼽는다면 아마도 <그들만의 계절 Varsity Blues>(1999)의 고교 미식축구 팀 코치인 버드 킬머(존 보이트)일 듯. 자신의 카리스마를 내세워 선수를 혹사시키며 결국엔 부상에 이르게 한다.

여섯 번째 법칙, 승리만이 미덕은 아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왼쪽)과 <후지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영화로 꼽히고 있는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는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다(무승부 판결이 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국가대표>도 금메달을 따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츄럴>(1984)처럼 9회말에 그림 같은 역전 홈런을 쏘아 올리며 조명등으로 불꽃놀이를 하는 영화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스포츠 영화들이 승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사용(이범수)에게 중요했던 건, 박철순과의 대결과 승리보다는, 마운드 위에서 펼치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스포츠 영화에서 '승리'는 오히려 부수적인 문제다. 스포츠 영화는 상대방을 이기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라고 이야기하며, 팀워크를 통해 집단 안에서의 자신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평소에 선수들에게 완벽함을 강조했던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에서 게인즈 코치는 마지막 게임에서 이렇게 말한다. "완벽해진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았음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일 테니까. 그 진실은 바로, 너희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그 사실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맑은 눈과 사랑으로, 이 순간을 살아라. 기쁜 마음으로. 너희가 그럴 수 있다면, 너희는 완벽하다." 비록 경기엔 지지만, 그들은 승리보다 값진 것을 얻었을 것이다. <후지어>의 코치도 이야기한다. "만약 너희들이,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경기에 집중했다면, 나는 스코어보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을 때, 우린 모두 승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한편 묘한 승부를 펼치는 영화가 한 편이 있으니 바로 <천국의 아이들>(1997). 소년은 달리기 대회에서 반드시 3등을 해야 한다. 1등도, 2등도 아닌 3등이다. 왜냐하면 소년은 3등상의 상품인 운동화가 필요했기 때문. 하지만 3등은 1등만큼이나 어려웠으니…. 과연 소년은 세 번째로 골인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 맞나?

일곱 번째 법칙, 로맨스가 없다면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제리 맥과이어>(왼쪽)와 <윔블던>.
스포츠 영화만큼 로맨스와 찰떡궁합인 장르도 드물다. 로맨스와 결부되지 않은 스포츠 영화를 찾기 힘들 정도. <소림축구> 같은 영화마저 주성치와 조미의 러브라인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 <록키>도 록키와 에이드리언(탈리아 샤이어)의 사랑이 있었기에 더욱 찡했고, 제리(톰 크루즈)와 도로시(르네 젤위거)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제리 맥과이어>는 너무 퍽퍽했을 거다.

<영블러드>(1985)나 <윔블던>(2004)은 사랑과 스포츠가 황금비율로 배합되었던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순애보의 극치였으니,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던, 엄지(이보희)에 대한 까치(최재성)의 맹목적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한편 <19번째 남자>(1988)의 애니(수잔 서랜든)는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의 저울질을 한다. 여기서 이 영화를 연출한 론 셸턴 감독을 잠깐 소개하면 '스포츠 영화의 장인'이었다(셸턴은 마이너리그 선수 출신이다). 야구 영화 <19번째 남자>로 데뷔한 그는 길거리 농구를 소재로 한 <덩크슛>(1992), 전설의 강타자에 대한 전기 영화인 <메이저리그의 전설 타이 콥>(1994), 골프 영회인 <틴 컵>(1996), 권투 영화인 <플레이 투 더 본>(1999) 등 다양한 종목을 섭렵했으며, 미식축구 영화인 <베스트 오브 타임즈>(1986)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여덟 번째 법칙, 그들은 편견에 맞선다.

<슈팅 라이크 베컴>(왼쪽)과 <아이언 레이디>.
스포츠 영화가 인간 승리의 드라마라는 건 주지의 사실.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성별, 인종, 국적, 사회적 통념 등에 얽매인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스포츠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테마다.

아마도 이런 테마를 지닌 스포츠 영화로는 여성 야구선수들의 실화를 그린 <그들만의 리그>가 아마도 가장 유명할 듯. 1940년대의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대중들 앞에서 야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금녀의 영역'에 도전한 여전사들이 있다면 <슈팅 라이크 베컴>(2002)과 <그레이시 스토리>(2007)에서 축구화를 신은 그녀들. 하지만 <오프사이드>(2005)의 여성 열성 축구팬도 만만치 않다. 여성은 축구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는 이란 사회의 법칙 앞에서, 그들은 월드컵 예선전을 직접 보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빌리는 뛴다 Running Brave>(1983)의 인디언 소년 빌리(로비 벤슨)가 그토록 뛸 수밖에 없었던 건 인종 차별의 벽을 넘기 위해서였다. <리멤버 타이탄>은 미식축구를 통해 인종 갈등을 허무는 이야기. <덩크슛>에선 백인이 열등한 존재가 되는데,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White Men Can't Jump'(백인은 점프 못 한다)가 말하는 것처럼 빌리(우디 해럴슨)은 슛과 패스 모두에 능하지만 덩크슛엔 젬병이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엔 덩크슛을 성공시킨다.

편견에 맞서는 스포츠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성 소수자들이 등장하는 배구 영화 <아이언 레이디>(2000).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이 팀을 구성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이자 퀴어 영화인 <아이언 레이디>는,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아홉 번째 법칙, 스포츠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불의 전차>(왼쪽)와 <천하장사 마돈나>.
만약에 인종 화해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할리우드의 고루한 방식을 사용한다면, 누군가가 등장해 웅변조로 미국의 위대한 가치인 '평등'을 설명한 후, 백인과 흑인이 손을 맞잡고 찬란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장면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직설법은, 스포츠 영화라는 프리즘을 거치면 은유법으로 변해 <리멤버 타이탄> 같은 영화에서 감동적인 드라마 속에 녹아든다.

스포츠 영화가 단지 경기나 훈련 장면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된다면 다큐멘터리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지, 굳이 드라마와 캐릭터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포츠 영화는 많은 의미와 굵직한 테마를 녹여내면서 '단순한 스포츠 스펙터클'에서 벗어나는데, 다시 <록키>를 예로 든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권투 영화임과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그리고 이 '아메리칸 드림'은 당시 무명배우였던 실베스터 스탤론 자신의 욕망이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주연을 맡으면서, 포르노 배우와 단역 생활을 청산하고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할리우드는 스포츠 영화를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영웅주의, 인간의 성숙, 사회의 타락, 경쟁의 가치, 승리의 대가 같은 테마가 스포츠를 매개체로 영화에 스며드는 것. 사이클 영화인 <브레이킹 어웨이>(1979)의 계급 갈등, <후프 드림스>가 보여주는 미국 슬럼가의 삶, <분노의 주먹>이 제시하는 자기 붕괴적인 인간상 등은 스포츠 영화이기에 너무 심각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테마들이었다. 1919년 메이저리그에서 있었던 승부 조작 사건을 다룬 <여덟명의 제명된 남자들>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팀워크) 사이의 갈등이라는 사회학적 테마를 쉽게 드러내며, <불의 전차>는 종교적 신념에 대해, <더 팬>(1996)은 스타덤과 팬덤의 관계에 대해, <천하장사 마돈나>(2006)는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한 소년의 커밍아웃에 대해, <역도산>(2004)은 영웅주의의 비극과 그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그저 '스포츠 영화'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좀 더 심오한 단어가 필요할 듯하다.

마지막 법칙, 그리고 스포츠 영화는 결국 인생을 이야기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왼쪽)와 <키즈 리턴>.
실화든 픽션이든, 개인 경기든 단체 경기든, 구기 종목이든 필드 게임이든, 코미디든 드라마든, 스포츠 영화의 '피와 땀의 연대기'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삶이다. '인생의 축소판'인 경기를 통해, 스포츠 영화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함께,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처럼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키즈 리턴>(1996)의 신지(안도 마사노부)가 링에서 참패하고 실의에 빠져 친구 마사루(가네코 켄)에게 "우린 이제 다 끝난 걸까?"라고 말할 때, 마사루는 마치 비웃듯 "바보,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는 걸?"이라고 대답하는지도 모른다.

스포츠 영화는 조용한 잠언처럼, 혹은 재치 있는 경구처럼 삶을 가르친다. "세상엔 익숙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지. 바로 섹스와 골프"라는 <틴 컵>의 대사나, "딴 돈이 번 돈보다 두 배는 달콤한 법이지"라는 <컬러 오브 머니>의 '경제 철학'(?)이 실용 정보라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에서 매기(힐러리 스웽크)가 "32살이 늦었다면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잊고 살았던 자신들의 꿈을 언뜻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베가 번스의 전설>(2000)에서 베가 번스(윌 스미스)가 "모든 사람의 내면엔 진정한 자신만의 스윙이 있죠.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에요. 오로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배워서 알 수 없는… 반드시 기억해내야 하는 그런 것"이라고 읊조릴 땐 더욱 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기도 한다.

스포츠 영화는 삶과 사회에 대해 가장 쉽게, 하지만 깊이 있게 발언하는 장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엔, 액션 블록버스터에선 맛볼 수 없는 휴머니즘적인 스펙터클이 있다. 스포츠 영화엔 단순한 킬링타임 무비이기를 거부하는 그 무엇이 있다. 바로 '그 무엇'이, 스포츠 영화가 관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서 숨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